역사

[스크랩] 대를 잇는 이지메 일본 부락민

곰도리맘 2017. 3. 29. 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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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오키나와 출신 유명 가수 아무로 나미에가 일왕 생일 축하연에서 기미가요 부르는 것을 거부해 이슈가 된 적이 있었죠.

"오키나와 출신으로 도저히 부를 수 없다''는게 그녀의 입장이었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오키나와나 일본이나 그게 그거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키나와는 류쿠 국으로 불리웠으며 본토에 의해 지배 당한 이후 금무정책으로 무기를 소지할 수 없었습니다. 

자연 오키나와 거주민들은 자기 나름의 대응책을 개발하게 된 것이 바로 '가라테'(공수도)입니다. 

칼도 창도 아무것도 소지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대단히 억눌린 삶을 살았고 본토인으로부터도 무시를 많이 당했습니다.  

세계 2차 대전 중에 오키나와 인들은 일본인들을 위해 터널을 파야했고 미군이 터널로 공격했을 때 일본군에 의해

인간방패로 사용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 같은 이유로 오키나와 사람들은 자신들을 일본인이라고 하지 않고 

오키나와 인이라고 부릅니다. 남미에 오키나와 출신 일본 이민자들이 많은데 자기들끼리 행사가 있으면 일본인이라 하지 않고 

오키나와 교민 단합대회 이런 식으로 자칭합니다. 


혹시 노나카 히로무라는 일본 정치인을 아시는지요?

그는 부락민 출신입니다. 류쿠인이나 홋카이도 원주민인 아이누인, 재일교포, 재일 중국인들이 민족적차별을 받는 것과 

달리 이들은 본토인임에도 불구하고 천민의 후예라는 이유로 오늘날까지 신분차별을 받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에피소드로 2001년 차기 유력 총리 후보였던 노나카 히토무가 부락민 후예라는 게 알려지자 고이즈미 파 아소 타로 (요즘 망언으로 자주 언론에 오르죠)에게 "저런 부락민 출신같은 놈이 천황폐하를 보좌한다면 일본은 그대로 망할거다"라는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낙마시킨 사건이 있죠.  노나카 히로무는 극우에 반대하는 입장의 발언을 많이 한 정치인입니다. 재일한국인들에 대한 차별에 대하여서도 반대하는 발언을 많이 한 사람이죠.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었구요. 아마 차별부락민 출신으로 노나카와 같은 정치인도 있지만 오히려 자신의 태생을 부정이라도 하듯이 더 극우로 치닫는 인사도 있었습니다. 오사카 시장인 하시모토입니다. 참 재미있죠?  

다음은 부락민에 대한 글을 옮겨왔습니다. 내용은 위에 블로그도 있는데 매우 알차니까 읽어 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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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타, 히닌 또는 신 평민으로 불리는 이들 천민들이 사는 마을을 일반인의 거주지와 구별해

부락, 특수부락, 피차별부락, 세민부락, 피압박부락, 미해방부락, 동화지구 등으로 불리며

‘사회 밖의 사회’로 취급 당하고 있다. 지금은 천민 호칭이 부락민(部落民)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부락민들은 그들의 부락을 떠나 타 지역으로 이주하기가 쉽지 않으며  이주해도 오래 버티기가 어렵다.

신분이 노출될 경우 노골적인 주위의 차별 때문에 다시 부락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지금도 대부분의 부락민은 그들만의 사회인 부락에 모여 살고 있다.

부락의 생활환경이 일반 주거지역에 비해 열악하기 그지 없지만 누구로부터도 눈총 받지 않고

마음 편하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부락민역사는 10세기의 헤이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17세기 에도막부 때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제도가 확립되면서 확실하게 굳혀졌다.

부락민 즉 천민은 이 네 계층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최하층의 집단인 인간카테고리 밖으로 밀려나버린 것이다. 이 후 부락민은 일반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 조치됐다. 천민이란 호칭은 13세기 가마쿠라막부 시대의 덴구조시(天狗草紙)이란 화첩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덴구란 깊은 산속에 사는 상상의 괴물로 천민은 이 동물과 같아 사람으로 취급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천민은 네발 달린 사람이라고 까지 비하되기도 했다. 천칭인 에타는 아이누 족의 멸칭인 에조(蝦夷)나 에미시(蝦夷) 또는 최초로 일본열도에 살았던 원주민을 말하며 히닌은 말 그대로 사람이 아닌 사람이라는 뜻이다.


해방령이 발표된 후 20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부락민들은 평민들이 종사하는농, 수산업과 제조업 또는 서비스업 분야 참여가 사실상 차단되고 있다. 1920년부터 일반학교와 부락학교의 통폐합조치가 시행됐으나

부락학교근무를 발령받은 교사가 근무를 기피하는가 하면 부락민출신교사가 어렵사리 일반학교 부임발령을 받아도 학생들의 수업거부에 부딪치게 된다. 심지어 일반학교에 다니는 부락민출신 학생은 수석을 해도 일반인학생들의 사기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언제나 최하위로 밀려나기도 한다.


20세기 들어서서도 평민지역에 거주하는 부락민은 평민이 경영하는 상점이나 음식점출입이 차단되기가 일쑤였다.

이처럼 사회적인 차별의 벽을 넘을 수 없는 부락민들은 지금도 옛날부터 해온 그들의 생업분야인 동물도축이나 폐사동물처리, 피혁의 처리와 가공 판매, 형무소나 사형집행장의 잡역, 화장과 매장, 염습, 묘지기, 비속예능인, 매춘 등의 분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락민의 장례식에는 승려조차 장례집전을 거부하며 일 때문에 타지에 갈 경우 부락민은 대부분 주택임차나 매입이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부락 밖 타지에서 상점이나 음식점 등을 경영할 경우 신분이 노출될 경우 그 동안의 고객들이 발길을 끊어버리는 일도 허다하다.

젊은 부락여성이 부락생활이 싫어 외지로 탈출해도 그를 기다리는 직업은 매춘이나 유흥업소뿐이다.

일본인들은 부락민을 은유적으로 다른 인종, 다른 민족, 다른 혈통, 또는 다른 가문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출처 : 달콤 씁쓸
글쓴이 : 곰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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