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스크랩] 일본 드라마 아츠히메...

곰도리맘 2017. 3. 29. 05:13



일본 드라마 아츠히메.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왜 이 드라마를 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유투브에 있으니 보시면 된다.
한글 자막은 없고 영어 자막은 있다. 일본어도 많이 배웠다.
곰방와, 하이, 오쿠사마, ...데스노...가와이 가와이 스고이...
일본 전국시대를 다룬 드라마들도 많다.
주로 NHK드라마들인데 공명의 갈림길, 풍림화산, 천지인, 고우, 공주들의 전국...
이런 드라마들인데 아츠히메에 꽂혔다. 아직 이 드라마를 다 못봤는데 내가 주목한 것은 일본 전국시대 무장들의 리더쉽과 메이지유신 시대의 리더쉽이다. 전국시대의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최근의 역사에 있는 메이지 유신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덜 알려져 있다. 나는 이 글에서 메이지 유신 시대를 함께 했던 에도 막부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이에사다의 부인이었던 아츠히메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한다.

아츠히메...
그녀는 일본 에도 막부시대의 사쓰마 번 출신이다. 
사쓰마 번은 현재 가고시마 현으로 한국과는 매우 가까운 편이며 류큐국이라고 불렸던 오키나와와도 가까울만큼 아주 더운 아열대성 기후를 가진 곳으로 현재 도쿄인 에도와는 남쪽 끝에 있는 곳이다. 당시 사쓰마 번주는 시마즈 나리아키라. 시마즈 가문하면 지금 한국에서 유행인 영화 '명량'에 나오는 시마즈 요시히로를 떠올리면 된다. 명량해전시 시마즈 요시히로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많은 일본인 군사들이 바다에 수장됐다. 원래 사무라이들은 자신들이 모시는 영주가 사망하면 영지고 뭐고 다 빼앗기 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영주를 살리는 것이 불문률이었고 이 때문에 임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 고니시 유키나와와 같은 일본 유명장수들이 목숨을 부지했다는 설이 있다. 


당시 일본은 지방분권제로 각 번 마다 영주가 있었고 그 영주 아래로 사무라이들이 있었다. 시마즈 집안은 도자기에 매우 심취해 있어 임진왜란 때 조선 도공을 무작위로 끌고 가기도 했다. 어쨌든 시마즈 집안은 임란 이후 도쿠가와 편과 토요토미 히데요시 가문과의 한판 대결이었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토요토미 편에 붙었다가 멸문지경이 되었으나 수하 사무라이들의 분전으로 목숨을 보전하고 저 멀리 에도와 떨어진 사쓰마로 달아나 버렸다. 그곳에서 260년 후 도쿠가와 가문의 막부의 막을 내리고 입헌군주제를 내세웠던 메이지 유신을 담당하는 신진세력들이 등장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가? 역사에 있어서 영원한 승자도 패자도 없는 법.


권력의 중심부였던 에도와는 멀리 떨어진 변방의 한적한 번이 되어 버린 사쓰마 번. 그런데 이 사쓰마는 중국, 동남아와 가까운 고로 네덜란드 배들이 자주 나타났고 동양의 진귀한 물품과 서양의 물품과의 교역을 요구했다. 사쓰마 번은 다른 번들이 쇄국정책을 지키며 문을 꽁꽁 닫는 사이에 네덜란드 배들과 교역을 하면서 막대한 부를 쌓는다. 이는 선각자적인 선구안을 가져던 번주 시마즈 나리아키라의 선택이었다. 그는 개화문명에 눈을 떴고 새로운 문명이 앞으로 대세가 될 것을 직감하고 과감히 문호를 개방한다. 또한 하급 사무라이들을 적극 등용해서 키우기 시작했는데 오다 노부나가나,시마즈 나리아키라 모두 새로운 역사를 쓰는 사람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그들은 새로운 문물을 적극 받아들였고 기존의 신분제를 타파하고 능력위주로 사람들을 등용했다. 그의 과감한 인재등용정책으로 메이지유신의 선구자인 사이고 다카모리, 오오쿠보 신지노스케, 사카모토 료마, 고마츠 다테와키와 같은 걸출한 인물들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이들은 에도바쿠후에서라면 전혀 중용될 일이 없는 하급무사 출신들이었으나 시마즈 나리아키라에 의해 등용되었다. 사쓰마 번이 융성해지고 에도 바쿠후가 저물어 가면서 도쿠가와 막부를 이끌었던 료주(집안의 장로들)들은 사쓰마 번과의 혼사를 통해 에도막부를 강고히 하고자 한다. 이 때 등장한 사람이 아츠히메. 일본 전국시대 시리즈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일본 영주들의 딸, 히메..라는 존칭이 붙여지는 여성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문을 위해 그 누구와도 정략결혼을 할 수 있는 것으로 교육을 받는다. 정략결혼 뿐이랴 이혼도 하고 재혼도 정략적으로 이뤄진다. 아츠히메는 사쓰마 번 시마즈 집안 중에 분가인 이와이즈미 가의 외딸로 번주인 나리아키라의 양녀로 입적된다. 이와이즈미의 녹봉이 1만석이라면 나리아키라의 녹봉은 70만 석. 당시 에도막부의 녹봉이 400만석이었으니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나리아키라의 양녀가 된 것은 이 같은 정략적인 요구에 의해서 였다. 그러나 단순히 번주의 딸이되었다고 쇼군의 아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쇼군의 아내는 대대로 공경집안 혹은 천황집안의 여성들이 되는 것이 관례였다. 사쓰마 번이라 하면 한국으로 따지자면 저 멀리 제주도 혹은 전라도 식으로 중앙권력과는 상대적으로 떨어진 곳으로 사투리도 아주 심하고 문화도 영 딴판인 지역이었다. 역사상 한 번도 공경집안 이하의 여성이 쇼군의 정실 미다이도코로가 된 적이 없었다. 이런 그녀가 쇼군의 아내가 되기 위해 다시 교토에 있는 유력 가문인 고노에 우대신의 양딸로 재입적되어야 했다. 이렇게 신분의 세탁, 세탁을 거쳐서 쇼군의 아내가 된 아츠히메. 그녀가 쇼군의 부인이 되기 위해 막부에 가져간 여러 헌물이나 지참금만 해도 지금으로 치면 400억원이나 된다고 하니 사쓰마 번이 엄청난 부자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녀가 쇼군들의 여성들이 거하는 오오쿠(아랍식으로 하면 할렘)에 들어갔을 때 오오쿠의 최고 노녀가 그녀를 교육시키는 것이 드라마 오오쿠에 나온다.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잠들기 까지 모든 동작 하나 하나를 다 교육을 받는다. 그녀가 쓰는 사쓰마 사투리 고치기도 마찬가지. 


그렇게 결혼을 한 쇼군 도쿠가와 이에사다는 전병굽기가 취미인 바보였다. 그 바보와의 결혼생활도 잠시 1년 반 후 이에사다가 병사함으로 끝난다. 그러면서 점점 도쿠가와 가문은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사쓰마 번에서는 막부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이렇게  벌어진 전쟁에서 도쿠가와 군은 크게 패배하게 되며 이는 곧 가문의 멸문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향인 사쓰마 번에서는 여러 번 과부가 된 아츠히메에게 고향으로 돌아오도록 권하지만 아츠히메는 도쿠가와 가문의 여인이 되었으므로 도쿠가와 가문과 함께 하겠다고 거절한다. 그녀는 대세를 거스를 수 없음을 인정하고 자진해 오오쿠를 해산하고 에도성을 천황에 돌려주는 대정봉환에 승인한다. 그리고 오오쿠에 거했던 많은 여인들과 도쿠가와 가문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에게 생활을 책임지겠다고 약속하고 그들의 후사를 위해 메이지 유신파들과 협상, 앞날을 보장해 준다. 그녀가 260년간 도쿠가와 가문이 거했던 에도성을 그 동안 함께 했던 모든 가신들, 노녀들, 시녀들과 떠났을 때, 그녀가 밖으로 가지고 간 것은 입은 옷가지 한 벌 뿐으로 나머지는 그대로 남겨 두고 떠났다 한다. 그 이후 그녀가 전념한 것은 도쿠가와 가문의 당주로 세움 받은 도쿠가와 이에미츠의 교육. 이에미츠는 후에 일본 수상으로까지 거론될 정도로 유명인사로 성장한다. 아츠히메는 도쿠가와 집안에서 큰 존경을 받고 있다. 그녀는 결혼 이후 고향 사쓰마 번을 가려면 갈 수 있었지만 그 후 한 번도 그 땅을 밟지 못하고 53세에 유명을 달리했다. 아츠히메 드라마 초기를 보면 그녀를 양육했던 유모 키쿠모토가 그녀가 나리아키라의 양녀가 될 것을 알게 된 후 천한 가문의 유모를 두었다는 사실을 지우고자 자진하는 사건이 나온다. 키쿠모토는 아츠히메에게 "여인에게는 단 한 가지 길 밖에 없습니다. 돌아오시면 수치입니다''라고 간곡히 당부한다. 그게 무슨 말이었는지 몰랐지만 기쿠모토는 명문가의 딸로 입양되어 가는 것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그랬기에 이 같은 당부를 하지 않았나 싶다. 


메이지 유신 주역인 사쓰마 번 시마즈 집안 사람으로 도쿠가와에 시집와 

도쿠가와 막부를 쓰러 뜨린 메이지 유신을 겪은 그녀. 아츠히메.
그녀를 보면 매우 현명한 선택을 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자존심을 내세우면서 
끝까지 도쿠가와 정권에 저항하다 오사카성과 함께 자신도 아들도 불살라진 히데요시의 측실 요도기미와 같은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아츠히메를 보면 시마즈 나리아키라가 그녀의 대장부와 같은 성품에 반했다는 내용이 나오는 데 "전쟁을 굳이 안하고도 얻을 수 있는 방식이 많은데 왜 전쟁을 해야 합니까?"라는 내용이 있다. 만약 그녀가 메이지 유신파들과의 싸움에서 전쟁을 선택했더라면 일본은 큰 내상을 치러야 했을 것이고 가문의 멸문 또한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가 사쓰마 번 출신이었기에 그 역할을 잘 해냈지 않았을까 싶다.

 

 


출처 : 달콤 씁쓸
글쓴이 : 곰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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